chatarra/2012 전북방문의 해

[전라북도] 시인 박남준의 고향예찬 "전주"

돼야지123 2011. 10. 30. 16:21

출처 :: 전북의 재발견 ::: 맛있는 전북, 멋있는 전북 :: 천년의비상

원문 http://blog.jb.go.kr/130122254057


 I 손을 들어 가리켜 전라북도와 전주라 부르겠다 I

시인 박남준의 고향예찬

시인 박남준은 치솟는 열정과 치기만만하던 문학청년의 젊은 날의 대부분을 이곳 전주에서 보냈다

그가 말하는 전북, 전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중노송동 1가 9-1번지의 기린봉 기슭에서 남원의 호동마을에서 임실에서 잠시 잠깐 세월의 미늘 없는 낚시 줄을 드리우기도 했었다.


마당 한쪽 그 넓은 푸르름이 보기에 좋아 심기도 했지만 선비들이 여름철 창가에 심어두어 그 큰 잎 위에 비가 드는 소리를 즐겨했다는 파초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파초 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라고 하지 않고 비드는 소리라고 했으니 얼마나 멋스러운 표현인가. 차를 마시는 다구 중에 숙우라는 그릇이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뜨거운 물을 차의 종류에 맞추어 알맞게 식혀서 다관에 붓는 것이니 물을 식히는 그릇이라고 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어로 익힐 숙, 사발 우자를 써서 물을 익히는 그릇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의 풍류가 그만하면 가히 본받아 따를 만 하다.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거문고를 생각했다. 고구려의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어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문고를 현학금, 현금이라고도 한다.


다만 음률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악기로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가까이 했다고 한다. 한동안 거문고를 머리맡에 두고 지내던 날이 있었다. 지리산자락 하동의 악양 땅으로 이사를 온지도 벌써 8년을 훌쩍 넘겼다.  젊은 날 나는 어서어서 전주를 떠나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간 그곳에서 그리워한 곳은 저 산 넘고 물 건너의 하늘아래 있을 전주였다. 향기를 좇아 헤매었다. 앉은부채를 찾아 눈보라치는 회문산 자락을, 동자꽃이며 매미꽃, 쪽동백을 찾아 지리산을 올랐다. 노랑상사화와 복수초를 찾아 모악산을 오르내렸으며 얼레지를 찾아 완주 화암사에 들렸다. 투구꽃과 모싯대꽃을 찾아 덕유산을, 흰해당화를 찾아 선유도행 뱃길을 달렸다.


소리를 따라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임실 필봉으로, 남원 금지로, 고창으로, 김제로, 익산 검지마을로, 운봉으로... 젊은 날은 어느새 희끗거리는 귀밑머리 반백의 나이에 들었다. 누구는 ‘중 보러 절에 오지 마!’라는 말을 했다. 붓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머물거나 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있어 대자 대비한 실천의 도리를 다 하라는 뜻이겠지만 나는 사실 중 보러 절에 가고는 한다. 세상에 다시없는 아무리 기가 막힌 풍경이라 한들, 제아무리 아름답고 아름다운 꽃의 자태라 한들 어찌 사람의 아름다운 향기에 비길 수 있을까.


한 사람의 고단한 삶이 알곡처럼 고개 숙이듯 익고 익어서 일부러 내보이지 않아도 천리만리를 전해가는 그 곧고 깊으며 단아하고 그윽한 향기를 나는 안다.


그 길을 따르고자 했다. 내가 전주의 하늘아래쪽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치이다. 
여름날 파초 잎에 비드는 소리의 한가함을 누리는 멋을 아는 이들이 살고 있는 곳, 물을 식히는 그릇이라 하지 않고 물을 익히는 그릇이라 부를 줄 아는 사람들이 살만한 곳,


다만 음률의 풍취로서만이 아니라 거문고의 소리음을 다스려 마음의 들고 남을 고요한 수면처럼 닦는 이들이 찾아가고 싶은 곳, 누군가 내게 찾아와 마땅히 그와 같은 곳이 있는가 묻는다면 손을 들어 그곳을 가리켜 전라북도와 전주라고 부르겠다.

 



# 이 원고는 전라북도 도정홍보지 '얼쑤전북'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2012 전북방문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