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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벌과 놀고먹는 벌...소설가 이순원

돼야지123 2010. 5. 28. 22:32

오늘은 제가 아는 재미있는 우화 한마디 하지요. 한 마을에 벌을 치는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경쟁할 수밖에 없겠지요. 두 사람 다 벌통을 하나씩만 가지고 있었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한 사람은 조금 욕심이 많고, 또 한 사람은 매사 조금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이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벌통엔 각각 1000마리의 벌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벌통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1000마리의 벌 중 200마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꿀을 따옵니다. 600마리는 대충대충 꿀을 따오고, 나머지 200마리는 제대로 꿀 한번 따오는 적 없이 없습니다. 늘 놀고만 먹는 거지요.

이러면 누가 화가 날까요? 당연히 일하는 벌들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벌은 제 일에 바빠 화도 안냅니다. 대충대충 꿀을 따오는 벌들도 대충대충 넘어갑니다. 화를 내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벌통의 꿀을 가져가는 주인입니다. 두 주인 중에서도 욕심 많은 주인은 마치 자기의 꿀을 놀고 먹는 벌들이 도둑질해가는 것처럼 화를 냅니다.

그는 하루종일 벌통 앞을 지키고 앉아 놀고먹는 벌 200마리를 벌통 밖으로 쫓아버립니다. 그 사람 벌통엔 이제 열심히 일하는 벌 200마리와 대충대충 일하는 벌 600마리가 남았습니다. 그냥 꿀만 축내는 벌들을 쫓아버렸으니 나중에 그들이 먹는 것만큼의 꿀이 꿀통에 더 남아 있을 거라고 흐뭇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쫓겨난 벌들은 갈 데가 없자 모두 옆집 벌통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쪽집 벌통엔 800마리의 벌이 있고, 저쪽집 벌통엔 1200마리의 벌이 있게 되었지요.

욕심 많은 사람 생각엔 이제 저쪽집 벌통엔 먹고 노는, 그러니까 꿀만 축내는 벌들이 400마리나 되어 가을에 꿀을 한 통도 뜨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며 혼자 실실 웃습니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이쪽 집 사람도 벌통에 든 벌이 늘어났다고 좋아합니다.

가을이 되어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욕심 많은 집 사람의 벌통엔 겨우내 800마리의 벌이 먹을 꿀이 들어 있었고, 이쪽 집 벌통엔 1200마리의 벌이 먹을 꿀이 들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쪽 벌통엔 한 통의 꿀이, 저쪽 집 벌통엔 한 통 반의 꿀이 들어있는 거지요.

욕심 많은 사람은 벌통 안을 자세히 살펴봤지요. 그랬더니 800마리의 벌 가운데 160마리만 열심히 꿀을 따오고, 480마리는 대충대충 꿀을 따오고, 다시 160마리는 놀고먹는 겁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저쪽집 벌통에도 몰래 가보더니 거기엔 1200마리의 벌 가운데 240마리가 열심히 꿀을 따오고, 720마리는 대충대충 따오고, 240마리는 놀고먹는 겁니다.

그제서야 욕심 많은 사람은 깨달았답니다. 벌은 어떤 벌들을 모아놓아도 그렇게 전체 중에서 20%는 열심히 꿀을 따고, 60%는 대충대충, 나머지 20%는 꿀 한번 따오는 일 없이 늘 놀고먹는답니다. 그걸 모르니 가을에 마지막 꿀을 뜰 때 깜짝 놀라는 거지요.

작년엔 1000마리의 벌이 겨우내 먹고도 남을 꿀이 벌통에 가득했는데, 올해는 800마리가 먹고 남을 양으로 줄어든 거지요. 어떤 벌을 쫓아내든 욕심 많은 사람이 쫓아낸 것은 꿀을 따는 벌 200마리였던 거지요. 진짜 놀고먹는 벌은 그 벌통 안에 한 마리도 없었던 겁니다. 주인이 보기에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던 벌 200마리도 여름 내내 제 몫의 보이지 않는 꿀을 따왔던 거지요. 안 따왔다고요? 직접 따오지는 않아도 머릿수로 다 따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벌들의 얘기고 사람들의 얘기는 또 좀 다르다고요? 당연히 그렇게 말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글쎄요. 예부터 인구 적은 강국은 없다는데, 사람들만 세상살이가 이렇다는 걸 잘 모르는 거지요. 아니면 제가 무얼 모르거나.

이순원 소설가